2025년 국내 금리는 5%대 고점을 장기간 유지하며 전세시장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집값 하락과 월세 선호 증가가 겹치면서 ‘역전세’―세입자가 맡긴 전세보증금이 시세보다 높아 집주인이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가 전국으로 확산됐다. 정부는 전세금 반환 보증대출 한시 확대, HUG 보증보험 가입 요건 완화, 임대차 갱신 지원금 도입 등 긴급 처방을 내놓았으나, 여전히 임차인의 보증금 회수 불안과 임대인의 유동성 위기가 병존한다. 은행권 전세자금대출 심사 강화, 금리 상단 고정형 상품 출시, 공공임대 물량 확대, 실거래 정보 공개 범위 확대 등 구조적 처방이 병행되어야 역전세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고금리와 역전세난, 왜 일어났을까?
전세제도는 거주 기간 동안 큰 목돈을 예치하고 만기 시 전액을 돌려받는 한국 특유의 임대 방식이다. 낮은 금리 환경에서는 예치된 보증금이 집주인에게 저렴한 자금 조달 창구로 작동했고, 세입자는 월세 부담 없이 거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22년 말부터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해 2025년까지 5% 선을 유지하자 전세 구조 곳곳에서 균열이 발생했다.
첫째, 높은 금리는 주택담보대출·전세대출 이자를 급등시켜 임대‧임차인 모두의 금융비용을 폭증시켰다.
둘째, 금리 상승으로 매매가격이 하락하자 전세 시세도 동반 하락했지만, 과거 고점에 계약된 보증금은
그대로 남아 ‘역전세’가 발생했다.
셋째, 월세 수익을 통해 금리 비용을 상쇄하려는 임대인이 늘면서 월세 비중이 60%를 돌파했고 서울은 70%에 근접했다.
넷째, 전세보증보험이나 반환대출을 활용하려 해도 집값 하락 탓에 담보가치가 부족해 보증 한도가 줄어드는 ‘보증 갭’이 생겼다.
결과적으로 2025년 상반기 기준 전세금 반환 소송 건수는 전년 대비 38% 급증했으며, 정부·금융권의 대응 속도보다 시장 균열 속도가 더 빨라 불신이 확산됐다.
정부·시장·개인이 취할 5대 대응 전략
1) 전세금 반환대출·보증보험 활용 극대화
정부는 반환대출 금리를 최대 1.5%p 인하하고 보증 한도를 2억 원에서 3억 원으로 확대했다. HUG는 집주인의 보증보험 가입 요건을 간소화해 담보인정비율(LTV)을 20%p 상향했다. 임차인은 계약 만기 6개월 전부터 가입 가능 여부를 점검해 만기일 자금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
2) 고정·혼합형 대출 상품으로 금리 리스크 분산
시중은행은 금리 변동폭을 상단 4.5%로 제한한 ‘전세안심 혼합금리’ 상품을 출시해 이자 부담 예측 가능성을 높였다. 금융소비자는 변동형 대출을 고정·혼합형으로 갈아탈 때 중도상환수수료 한시 면제 혜택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3) 임대차 계약 전 실거래·보증 위험 정보 점검
2025년 3월부터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은 보증보험 가입 여부, 전세권 설정 현황, 임대인 체납 사실을 함께 보여준다. ‘깡통전세 위험지수’ 레이더 차트를 확인해 지역·평형별 위험도를 비교하면 역전세 위험을 질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4) 공공전세·월세 전환 지원
정부는 수도권 3만 호, 지방 2만 호 규모의 ‘공공역전세 회수주택’을 매입·운영해 세입자가 공공전세나 월세로 갈아탈 때 우선 입주권을 부여했다. 월세로 전환한 임대인에게는 보증금 반환용 저리 대출(연 2.7%)을 지원해 ‘착한 전환’ 유인을 제공한다.
5) 임대인 부채 구조조정·라이츠(REITs) 편입
다주택 임대인은 고정금리 전환, 만기연장을 포함한 채무 조정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금융위원회는 역전세 위험 주택을 공공·민간 REITs로 매입 전환하는 ‘전세정상화펀드’(3조 원)를 신설해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다.
역전세 리스크, 어떻게 줄일 것인가?
역전세난은 고금리·집값 하락·제도 허점이 복합적으로 얽힌 구조적 위기다. 단기적으로는 보증보험·반환대출·공공 매입임대 등 안전망을 통해 피해를 막아야 한다. 중기적으로는 전세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는 데이터 투명화, 보증보험 의무가입 구간 확대, 임대인 신용평가제 도입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전세와 월세의 이원적 구조를 다층형 장기 임대상품으로 전환하고, 기준금리 변동에 연동되는 ‘시장형 전세금리 지표’를 도입해 금리·가격 리스크를 상시 관리해야 한다. 또한 임차인·임대인을 모두 보호하는 ‘전세 우선변제 한도 상향’, ‘임차권 등기 자동화’ 같은 채권 회수 메커니즘을 강화해야 한다. 고금리 시대가 장기화될수록 전세 제도는 더 많은 충격을 받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회성 지원금을 넘어선 구조 개혁과 시장 참여자 모두의 리스크 관리 역량이다. 정부, 금융기관, 임대인, 임차인이 투명한 정보를 공유하고 책임을 분담할 때만이 전세제도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역전세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